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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북리뷰>『코스모스』, 칼 세이건, 홍승수 옮김(사이언스북스, 2022) 우주적 겸손과 인간적 경이의 찬가 "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." 칼 세이건의 이 헌사는 『코스모스』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를 압축한다. 우주의 무한함 앞에서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도, 바로 그 유한함 속에서 발견하는 사랑과 연결의 가치를 찬양하는 이 문장은, 과학적 객관성과 인간적 주관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서곡이다. 세이건이 『코스모스』를 통해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.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이해할 수 있으며, 이러한 이해야말로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.세이건은 "우리는 우주.. 2025. 10. 25.
<북리뷰>『넥서스』, 유발 하라리, 김명주 옮김(김영사, 2024) 우리는 선택하는가, 선택당하는가유발 하라리 『넥서스』가 묻는 근본적 질문들. 당신은 오늘 아침 무엇을 선택했는가? 출근길에 들은 음악, 점심 메뉴, 퇴근 후 본 영상.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을 것이다. 하지만 잠시 멈춰 생각해보자. 그 음악은 스트리밍 앱이 당신의 '취향'을 분석해 추천한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가 아니었는가. 점심 메뉴는 배달앱이 제시한 '오늘의 추천' 중에서 고른 것이 아니었는가. 그 영상은 알고리즘이 당신의 시청 기록을 바탕으로 피드 상단에 올려놓은 것이 아니었는가. 우리는 선택한다고 믿는다. 하지만 실제로는 선택지가 이미 정해져 있고, 우리는 그 안에서 '예' 버튼을 누를 뿐이다. 10년 전, 우리는 하루에 수십 개의 결정을 내렸다. 지금은 AI가 우리 대신 99.. 2025. 10. 25.
<북리뷰>『침묵의 봄』, 레이첼 카슨, 김은령 옮김(에코리브르, 2020) 침묵의 봄: 생명의 연대기가 던지는 성찰 진화의 여정과 인간의 역설 찰스 다윈이 『종의 기원』에서 말한 "그토록 단순한 시작"으로부터 수십억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생명은 놀라운 다양성의 직조물을 만들어냈다. 인간은 그 장대한 진화의 역사 속 한 가닥에 불과하다. 우리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함께 같은 뿌리에서 나온 존재이며, 지구라는 생태계의 그물망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다. 그러나 레이첼 카슨이 1962년 『침묵의 봄』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이 생명 공동체의 일원인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고향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극적 증언이었다. “오늘날 미국의 수맣은 마을에서 활기 넘치는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?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.”(p.28) 침묵이 내린 봄 .. 2025. 10. 25.
<북리뷰>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(스티븐 레비츠키, 대니얼 지블랫, 어크로스, 2018) 2024년 12월 3일 밤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. 비상계엄을 경고하는 정치권의 주장이 있었지만 설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?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은 일어났고, 계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던 의회의 신속한 대응과 시민들의 힘으로 불과 두 시간 반 만에 계엄은 해제되었다. 그날 밤, 의회와 시민들이 나라를 구했다. 친위쿠데타로 불러야 할 비상계엄 선포의 표면적 명분은 ‘반국가 세력 척결’이었다. 그것은 집권세력에 맞서는 모든 시민과 정당, 그 지지자들을 ‘반국가 세력’으로 규정하여 ‘처단’하고 영구집권을 획책한 사건이었다. 현 집권세력의 권력 사유화 욕망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것이다. 권력의 사전적 정의는 ‘남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거나.. 2025. 4. 9.